정부 ‘일자리 지원금’ 해고 막긴 역부족
유급휴직 지원책 무력화 지적도 제기…“지급액 높이고 노동자에 선택권 줘야”
정부가 ‘하나의 일자리도 반드시 지키겠다’는 기조 아래 무급휴직자에게 월 50만원을 지급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휴직 상태로나마 고용을 유지해 실업을 막는다는 취지다. 그러나 현실에서 노동자는 50만원짜리 휴직과 198만원의 권고사직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정부는 유급휴직 수당을 90%까지 지원하는 제도도 운용 중이지만, 회사는 10%도 부담하지 못한다며 외면한다. 무급휴직 지원 제도는 이들 유급휴직을 회피하는 회사의 면피 수단으로 활용된다.
고용노동부는 13일 무급휴직 신속지원 프로그램(무급휴직 신속절차) 지원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고용보험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 제도는 코로나19 여파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무급휴직을 실시하면, 무급휴직자에게 정부가 월 50만원을 ‘고용유지지원금’ 명목으로 최대 3개월간 지급한다. 기업은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유례없는 경제 위기 속에서 무급휴직 형태로나마 고용을 유지하자는 게 제도 취지다. 수개월 돈을 받지 않으면 노동자가 큰 타격을 받으니 정부가 기업을 대신해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것이다. 휴직수당을 감당할 수 없다는 재계 목소리를 반영해 지난달 27일 신설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같은 달 22일 비상경제회의에서 긴급 고용 안정 대책 밑그림 설명하면서 “무급휴직 신속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적극적으로 고용이 유지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월 50만원으로 생계유지?…지원금 상향 아닌 대상 업종 확대로 가는 정부
산업 현장에서는 이 제도가 고용유지라는 애초 취지와 달리 작동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퇴직을 유도하는 수단’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문제는 지원 금액이다. 50만원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20·30대 1인 가구도 한 달을 버티기 어렵다. 4인 가구 가장이라면, 생계유지 지원금으로서의 의미가 무색해진다.
직면한 생계 위기는 실업에 따른 불안을 앞선다. 회사의 권고사직을 받아들이고 실업급여를 받는 노동자가 늘고 있다는 게 노동계 전언이다. 실업급여는 평균임금의 60%를 최장 9개월간 지급한다. 실업급여 상한액은 한 달 198만원이다.
특별고용지원 업종인 숙박업을 예로 들면, 경제 허리로 불리는 40대의 평균임금은 근속연수 15~20년 차 기준 월 400만원 수준이다. 실업급여 상한액을 받을 수 있다.
이상욱 공공운수노조 조직국장은 “회사가 무급휴직 신속절차를 신청하면 결국 사람들은 (회사를) 나간다”며 “유급휴업이 어려운 사업장에 50만원이라도 지원하겠다는 취지는 이해하는데, 그러면 정부가 강조하는 고용유지를 못 한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무급휴직 신속절차 지원금을 높이는 데 대해 유보적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제도를 시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원금 상향을 논의하는 건 시기상조로 보인다”고 말했다.
무급휴직 신속절차는 고용보험기금을 재원으로 한다. 현재 편성된 예산은 5천억원이다. 이번에 대상 업종을 확대하면서 3차 추경을 통해 예산을 늘릴 계획이다. 충분치 못한 지원금으로 효과가 의심되는 가운데, 정부 정책은 지원 수준을 높이지 않고 지원 대상을 넓히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노동자 권익 침해 우려한 정부, 보호 대책은 미비
특별고용지원 업종이 활용할 수 있는 고용유지지원금 제도에는 무급휴직 신속절차 외에도 무급휴업·휴직 일반절차와 유급휴업·휴직 지원이 있다.
무급휴업·휴직 일반절차는 평균임금의 최대 50%를 정부가 노동자에 지급한다. 이때 사업주 부담은 없다. 다만, 이 제도를 신청하려면 먼저 유급휴업을 1개월 시행해야 한다.
정부는 유급휴업·휴직 지원책도 마련해 회사 부담을 최소화했다. 회사가 지급하는 휴업수당(평균임금의 70%) 중 최대 90%를 지원금으로 충당한다.
사업주가 한 달간 휴업수당의 10%만 지급하면, 숙박업에 종사하는 40대 A 씨는 4개월간 실업이 아닌 휴직 상태로 실업수당에 준하는 돈을 받을 수 있다.
회사에 선택권을 주면, 무급휴직 신속절차를 신청할 가능성이 크다. 회사로서는 자기분담금이 없어 가장 유리한 제도이지만, 노동자에게는 지원 금액이 가장 적은 제도다.
무급휴업·휴직 일반절차와 무급휴직 신속절차는 노사 합의를 전제로 한다. 사업주는 노사합의서나 개별노동자 동의서를 제출해야 한다. 노동부는 “근로자 권리 보호와 사업주 도덕적 해이 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노사합의는 필수 요건”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조합이 없거나, 있더라도 조합원 규모가 작은 기업에서 노사합의나 노동자 동의는 형식적인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 회사가 ‘동의서에 사인하고 50만원이라도 받거나, 권고사직 수용하고 실업급여 받아라’라고 종용하면 개별노동자가 대항하기란 쉽지 않다.
정부도 고용유지원금 신청 과정에서 노사합의가 노동자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을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10인 미만 사업장은 무급휴직 일반절차나 신속절차를 신청하지 못하게 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 노동부는 “소규모 사업장은 노사대등성이 약해 사업주 일방의 결정에 따라 무급휴직이 실시될 가능성이 높아 근로자 권익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규모 사업장에서도 무급휴직 신속절차를 신청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하청사인 아시아나KA는 회사부담이 없는 무급휴직 신속절차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총 직원은 500명이 넘지만, 단일노조 조합원은 20명 안팎이다. 노조 조합원이 한 명도 참여하지 못한 노사협의회를 통해 합의가 이뤄졌다. 노조 관계자는 “협의회는 노동자 위원 의견이 계속 묵살되면서 노사협의로서의 기능이 퇴색됐다”며 “회사는 협의회를 통해 현장 목소리와는 거리가 있는 무급휴직 신속절차 신청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무급휴직 지원이 고용유지 효과를 보기 위해 노동자에 신청 제도를 선택할 권한을 주는 방안이 제시된다. 노동자 동의를 받거나 소규모 사업장을 지원하지 않는 방식으로는 회사가 노동자 의사에 반해 무급휴직 신속절차를 신청하는 행태를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노동자가 자신의 형편에 맞게 지원 제도를 선택할 수 있어야 정부도 정책적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설명이 따른다.
이 조직국장은 “고용을 유지하려면 무급휴직 실속절차가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왜 유급휴업·휴직 지원과 무급휴업·휴직 일반절차를
신청하지 않는지 조사해서 그에 맞는 방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