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시스템 무력화시켜 경영세습 정당성 찾겠다는 이재용의 초법적 발상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초법적 행태가 급기야 도를 넘어섰다. 이미 연관된 사법 판단을 여러차례 받았던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한 수사가 부적절하다는 취지의 태도를 공개적으로 취하고 나선 것이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작업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불법 의혹의 핵심 인물인 이 부회장 측은 전날 자신이 수사받고 있는 사안에 대한 기소의 타당성을 판단해 달라며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했다.

수사 대상자의 수사심의위 신청은 수사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인식을 토대로 제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수사심의위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건의 수사 과정을 심의하고, 수사 결과의 적법성을 평가하기 위한 제도로 2018년 도입됐다. 수사심의위에서는 심의 대상 사건의 수사 계속 여부, 기소-불기소 여부, 구속영장 청구 및 재청구 여부를 판단한다.

박근혜-최순실-이재용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서 이 부회장 관련 혐의 수사를 담당했던 이복현 부장검사가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는 지난달 26일과 29일 이 부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두 차례 소환 조사한 뒤 사법처리 방향을 조만간 결정할 방침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와중에 이 부회장은 자신에 대한 수사 및 기소의 적절성을 따지겠다고 나서면서 검찰 수사는 마무리 단계에서 차질을 빚게 됐다.

어차피 수사 대상인 이 부회장으로선 수사를 계속할 필요가 있다는 수사심의위 결론이 나오더라도 큰 타격이 없다. 대신 심의 과정에 시민위원들도 참여하는 만큼, 만약 반대 결론이 나와서 수사팀이 이를 받아들인다면, 수사의 정당성에 힘이 빠짐과 동시에 이 부회장은 해당 사건 피의자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 부회장 측은 경영권 승계 작업이었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4조원대 회계조작 등에 관여한 의혹을 검찰이 입증하기 어려우며, 재판으로 넘어가더라도 법정 싸움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동안 나온 각종 법원 판단들에 비춰봤을 때, 이 부회장 측의 이러한 인식은 사법부는 물론 대중을 기만하는 것에 가깝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뇌물 사건에서 사법부는 현재까지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한 이 부회장의 부정한 청탁이 있었음을 인정한 상태다. 이들 사건은 파기환송심과 재상고심을 남겨두고 있다.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상 벌어진 삼성의 내부 의사결정에 대한 위법 여부를 직접적으로 다룬 사건은 아니지만, 이 부회장 승계작업이 있었다는 점, 이를 목적으로 한 부정한 청탁과 돈이 오갔다는 것이 인정됐다는 점은 분명하다.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특검 수사를 받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1,2심에서 유죄를 받은 판결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재판부는 문 전 장관의 직권남용, 홍 전 본부장의 업무상 배임 혐의를 인정하면서, 합병이 실현된 결과로 “이 부회장이 이득을 얻었다”고 판시했다.

공교롭게도 이 부회장과 연관돼 있는 이들 사건은 모두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남겨두고 있다. 국정농단과 관련된 사건들 대부분 재판이 상고심까지 마무리됐지만, 이 부회장 운명을 결정짓는 사건들만 최종 판단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현재까지 나온 사법부 판단에 비춰봤을 때, '박근혜 정부가 이 부회장의 청탁에 따라 경영권 승계 작업을 적극적으로 도왔고, 이 부회장이 경영권을 세습하는 이득을 얻었다'는 점은 명확하다.

단, 경영권 승계 작업을 물밑에서 주도한 옛 미래전략실(미전실)의 의사결정과 관련한 수사 결과와 사법 판단만 나오지 않은 상태다. 이 부회장 휘하에 있는 대부분의 수사 대상들은 이 부회장이라는 ‘몸통’을 부인하고 있는 데다, 그룹 내부에서도 이 부회장 관여 여부가 확인되는 물적 증거를 남겨두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의혹을 풀어내는 마지막 고리인 셈인데, 이와 관련한 사법 판단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부회장은 이러한 사법처리 과정상 취약한 지점을 파고들었다. 이 부회장으로선 만약 수사심의위에서 의도한 결과를 얻는다면, 실형 선고가 유력한 뇌물 사건 파기환송심에서도 참작 사유가 발생하길 기대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