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만난 김종인 “4년 전엔 내 자리였는데...기분 이상하다”
21대 국회 개원일 두고 기 싸움, 뼈 있는 대화 속 ‘여야 협치’ 공감대

정치권 내 32년 악연 관계로 알려진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3일 여야 수장으로 마주 앉았다.

김 위원장은 이날 취임 인사차 민주당 대표실을 찾아가 이 대표를 예방했다. 먼저 도착해 문 앞에서 김 위원장을 기다리고 있던 이 대표는 김 위원장을 보자마자 “반갑다”며 악수를 건넸다.

이후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덕담으로 시작해 뼈 있는 말로 대화를 이어갔다. 여야 협치에 서로 뜻을 모으면서도 3차 추경, 21대 국회 원 구성 등 현안에 대해서는 첨예한 신경전도 펼쳤다.

먼저 입을 뗀 이 대표는 김 위원장에게 “선거 끝나고 한 달이 됐는데 (통합당 비대위원장이라는) 어려운 일을 맡아줬다”며 “정당 문화와 국회가 혁신하는 좋은 시작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서 2016년 20대 총선 당시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맡아 당권을 쥔 바 있는 김 위원장은 “4년 전에는 내가 여기(민주당 대표) 자리에 앉아있었는데”라며 “여기 회동에 오게 되니 기분이 상당히 이상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김 위원장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경제가 상당히 변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 정치권도 옛날 상황으로 할 수는 없다”며 “이제는 여야가 나라 발전하는 상황에 서로 협조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우리가 여기에 대해 비상한 조치를 세우지 않으면 ‘선진국으로 바로 진입하냐’, ‘이 상황에서 추락하냐’ 기로에 서 있다”며 “빨리빨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런데 제가 최근에 느낀 것은 정부 재정이 한 번도 경제 정책에서 큰 역할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국가 부채에 대한 두려움만 있고 국가 부채를 얘기하면 마치 나라가 금방 가라앉는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정부 재정과 관련해서 예산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며 “국회가 거기에 대한 역할을 충실히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가 방역 체제에 있어서는 국제적으로 가장 성공한 사례를 보이고 있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초기처럼 방역에만 집중하고 경제 사회 문제를 동시에 취급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발언했다. 그러면서 “정부 재정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타나는 상황이다. 국회가 정상적으로 잘 작동돼서 이 사태를 빨리 극복할 수 있도록 정부의 노력을 저희도 적극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지금 제일 중요한 게 (21대 국회) 개원 문제”라며 “이 대표가 7선에 관록이 가장 많은 분이니 과거 경험을 봐서 정상적인 개원이 될 수 있도록 협력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에 이 대표는 코로나19와 관련 “방역은 어느 정도 관리 범위까지 들어와 있는데 백신, 치료제 등이 아직 개발이 안 돼 아주 걱정”이라며 “경제 문제가 생각보다 상당히 타격이 클 것 같다”고 김 위원장의 말에 공감했다.

아울러 “경제 긴급대책을 세우긴 하지만 그걸로 끝날 일은 아니다. 여야가 합의해서 경제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여태까지 해온 게 너무 많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며 “다행히 김 위원장도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은 일리가 있다’고 하면서 잘 검토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고 언급했다.

이 대표는 “4일 정부의 3차 추경안이 국회에 제출된다”며 김 위원장에게 “예산이 잘 집행될 수 있도록 빨리 심의해서 빨리 통과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또한 “20대 국회까지와는 좀 다른 모습으로 21대는 서로 간의 정치가 신뢰받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마침 이번에 중요한 비대위원장을 맡았으니 새로운 모습, 기존과는 다른 모습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 대표의 발언에 일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민주당이 ‘국회법에 따라’ 오는 5일 개원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야 간 상임위원장 배분, 원 구성 협상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빨리 원이 구성될 수 있도록 (민주당이) 협조해 달라”며 “원 운영은 좀 종전과는 달리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 대표는 “5일 개원은 원래 하도록 돼 있는 거기 때문에 기본적인 법은 지켜가면서 협의할 건 협의하겠다”며 “불필요한 (갈등은) 우리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소통만 충분히 하면 가능하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우리 (김태년) 원내대표가 아주 원숙하신 분이다. 잘 풀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10분간의 공개 회동을 마친 이 대표와 김 위원장은 이후 언론사는 물론 양당 관계자들을 모두 물린 뒤 5분간 배석자 없이 독대했다. 민주당 송갑석 대변인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이 대표는 김 위원장에게 3차 추경안의 빠른 처리에 대한 통합당의 협조를 거듭 당부했고, 김 위원장은 1차 추경 규모를 거론하며 ‘정부가 앞선 상황을 안일하게 봤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미·중 (갈등) 관계가 심각한데 그 사이에서 우리나라가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특히 외교부를 중심으로 잘 잡고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송 대변인은 전했다.

한편, 두 사람의 32년 인연은 지난 1988년 13대 총선에서 시작된다. 당시 비례대표만 두 번 지낸 김 위원장은 민주정의당 후보로 첫 지역구 도전에 나서 서울 관악을에 출마했지만, 평화민주당 후보였던 정치신인 이 대표에게 5천 여표(4%포인트) 차이로 패했다.

이후 2016년 20대 총선 국면에 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된 김 위원장은 친노(친노무현) 좌장이자 6선의 이 대표를 공천에서 배제시켰다.

이 대표는 김 위원장의 결정에 불복해 민주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세종시에 출마했고 7선에 성공해 복당했다. 반면 셀프 공천으로 비례대표에 또다시 당선돼 20대 국회에 입성한 김 위원장은 2017년 3월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민주당을 등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