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사상 최대 규모인 35조3,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마련했다. 2009년 금융위기 당시 28조4,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이 편성된 이후 가장 큰 규모다. 그만큼 정부가 경제회복에 집중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부는 3일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이같은 내용을 담은 ‘경제위기 조기극복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비를 위한 제3회 추경안’을 확정했다. 추경안은 4일 국회에 제출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우리 경제는 코로나19로 인한 소비투자 부진 등 내수에 직격탄은 물론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수출 관광 급감 등 경제적 타격을 피해갈 수 없다“라며 3차 추경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홍 부총리는 “1분기(1~3월) GDP가 전분기 대비 –1.4%를 기록하고, 4월 취업자 수도 전년 동기 대비 47만6,000명이 감소하는 등 경기 여건의 악화와 고용충격이 점차 더 가시화되는 양상”이라며 “그동안 정부가 2차례 추경, 5차례의 문재인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회의 등을 거쳐 총 250조원 규모의 직접지원대책을 강력 추진해 오고 있으며 납기유예나 만기연장 등 간접지원도 350조원 규모에 이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이러한 대책들은 재정실탄이 뒷받침돼야 실효성을 발휘하게 된다”라며 “(앞으로) 고용충격파가 커질 것이기 때문에 고용충격을 흡수할 재정대응이 시급하고 또 하반기 내수수출 등 경기회복세를 뒷받침할 재정지원 또한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홍 부총리는 “이것이 지난 4월 긴급재난지원금 지원사업만을 위한 원포인트 2차 추경에 이어 금번 3차 추경안을 마련하게 된 이유”라고 말했다.
정부의 이번 3차 추경안은 총 35조3,000억원 규모로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추경(28조4천억원)을 넘어서는 역대 가장 큰 규모다.
외환위기 이후 1998년 추경(13조9천억원)도 넘어선다.
추경안은 세입경정 11조4,000억원, 세출 23조9,000억원으로 구성됐다.
이번 추경안 재원은 세출구조조정과 적자국채 발행 등을 통해 조달한다. 추경안의 약 30%에 해당하는 10조1,000억원은 올해 예산 사업에 대한 강도 높은 지출구조조정을 통해 조달했다. 또 근로복지진흥기금 등 8개 기금의 여유재원을 총동원해 1조4,000억원을 충당했다.
세출구조조정에도 부족한 재원 23조8,000억원에 대해서는 적자국채를 추가 발행한다. 정부는 3차 추경으로 국가채무비율은 43%까지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홍 부총리는 “재정이 어렵다고 지금과 같은 비상경제시국에 간곡히 요구되는 국가의 역할과 최후의 보루로서 재정의 역할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라며 “중기적으로 지금의 재정의 마중물과 펌프질이 위기극복-성장견인-재정회복의 선순환을 구축하고 국가경제에 기여하리라 판단했다. 48년 만에 한 해 3차례 추경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또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 43%는 OECD국가의 평균 국가채무비율 110% 비해 재정여력이 있고 양호하다고 판단한다”라고 덧붙였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자료사진)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자료사진)ⓒ정의철 기자
아울러 정부는 23조8,000억원 규모의 적자국채 발행에 따른 시장충격 대응책도 마련했다.
통상 대규모 국채발생 시, 시중의 많은 자금이 국채에 투입된다. 국채에 자금이 몰리면, 시중에는 반대로 자금이 적어지면서 돈 값인 금리는 상승한다. 금리 상승은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다만 정부는 한국은행의 채권 매입 의지, 안전자산 선호 현상 등에 따라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뤄 시장 충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홍 부총리는 “최근 국제적으로 초저금리 상황이라 부담을 완화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며 “보험사나 자산운용사가 국고채에 대한 견고한 수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한은이 국고채를 흡수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저희로서는 국고채시장에 대하나 충격이 상당히 완화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홍 부총리의 말을 종합하면, 먼저 초저금리시대가 국고채 투자에 대한 매력도를 높여 시장 수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저금리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예금이자로 이익을 보기 어려워 부동산, 주식 등 투자처를 찾기 마련이다.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 상황이라면 안전자산으로 눈을 돌려 국고채에 대한 투자수요가 생긴다. 최근 보험사, 자산운용사도 이 같은 이유로 국고채 투자를 확대하는 추세다.
국고채 수요가 예상보다 낮을 경우도 대비했다. 한은이 국고채 매입에 적극 나서기로 하면서 시장 안정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 것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전날 금융통화위원회 전체회의를 마치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3차 추경에 따라서 국고채 발행 규모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한은은 필요시 국고채 매입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라고 뜻을 밝힌 바 있다.
아울러 홍 부총리는 대규모 국채 발행에 따른 시중금리 인상으로 발생할 수 있을 외환시장 투기거래 가능성도 차단하겠다는 방침이다.
홍 부총리는 “정부는 외환시장에 대해서 어떤 투기적인 거래라든가 이와 같은 환율의 일방향 쏠림현상이 과도하게 확대될 것으로 판단이 될 경우에는 정부가 갖추고 있는 여러 가지 단호한 시장안정조치를 작동시켜 대응해 나갈 예정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말씀드린다”라고 경고했다.
3차 추경안에 담긴 내용은?
3차 추경은 그간 정부가 비상경제회의 등에서 밝힌 구상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총알’ 역할을 한다.
우선 금년도 성장률 하락에 따른 세수감소와 자동차, 개별소비세 한시 감면 등 세제 감면분을 반영해 11조4,000억원 규모의 세입감액(세입경정)을 반영했다.
세출 측면에서는 135조원 규모의 금융안정패키지, 10조 규모의 고용안정 특별대책, 한국판뉴딜 및 하반기 경기회복 지원을 반영했다.
금융안정패키지는 소상공인, 중소중견기업을 위한 긴급자금 40조원을 공급하기 위해 국책은행(산업·수출입·기업은행), 보증기관 등에 대한 출자출연보증방식으로 약 1조9,300억원을 지원한다. 또 주력·산업기업에 대한 긴급유동성 42조를 공급하기 위해 3조1,000억원 등 총 5조원을 예산에 집어넣었다.
고용안정 특별대책과 관련해 예비비로 긴급지원한 사업을 제외한 나머지 재정소요 8조9,000억원을 이번 추경에 반영했다. 주요 내용은 무급휴직 등을 통해 고용유지한 기업에 지원하는 고용유지지원금 0.9조원, 특수고용노동자 등 고용사각지대 지원을 위해 신설한 긴급고용안정지원금 0.6조, 비대면 디지털일자리 등 55만개+α의 직접 일자리창출 3조6,000억원, 실업자에 대한 고용보험 구직급여 3조5,000억원을 포함해 총 8조9,000억원을 계상했다.
또 코로나19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소득 가구 대상 긴급복지 지원을 당초 22만 가구에서 3만 가구를 늘려 총 25만가구를 지원하도록 하고, 저신용 노동자, 대학생, 미취업 처년 등을 대상으로 서민금융 1조원을 추가 공급하기 위한 재정 소요분도 담겼다.
문화예술체육계 종사자, 국가유공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보조금과 융자를 위하여 349억원을 계상하고 청년과 신혼부부 등을 위한 임대주택 1,300호 추가 공급을 위한 2,185억원을 예산에 넣어, 주거안정 지원도 강화했다.
특히 하반기 경기회복을 위해 11조3,000억원 규모의 경기보강 3대 패키지도 실시한다. 첫 번째 패키지는 내수와 수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3조7,000억원을 투입한다. 숙박공연외식 등 8대 분야 할인소비 쿠폰을 1,684억원 신규 발행하고 온누리상품권과 지역사랑상품권을 9조원에서 14조원으로 추가 발행한다. 고효율 가전제품에 대한 구입지원도 현재 1,500억원 수준에서 4,500억원으로 3배 늘린다. 뿐만 아니라 수출력 회복 지원을 위해 무역보험기금 출연금을 3,271억원 추가 계상하여 무역금융 36조원+α를 뒷받침한다. 또 노후화된 사회간접자본 안전보강을 위해 5,525억원, 자동차조선항공 등 위기업종 경쟁적 강화 위한 R&D, 보증, 공공발주 확대에 650억원도 추가 반영했다. 아울러 교부세 감소에 따른 지방재정여력 보충을 위해 지방채 인수자금 1조1,000억원도 반영됐다.
두 번째로 K-방역을 고도화, 산업화, 세계화해 국민이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데 2조5,000억원을 사용한다. 정부는 이를 위해 의료용 보호구 772만개 등 비축비 2,009억원, 중고교생 대상 인플루엔자 무상접종 대상 확대에 265억원을 사용한다. 또, 음압병상 120병상 확대 및 호흡기 전담클리닉 500개소 구축도 계획하고 있다. 이번에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의료기관에 대한 융자금 4,000억원도 추가적으로 계상한다. K-방역의 국제표준모델을 개발하는 한 편, AI역학조사 지원시스템 개발 수출을 위해 114억원도 별도로 예산에 넣었다.
소위 ‘한국판 뉴딜’은 크게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휴먼(고용안정)뉴딜 3축으로 구성된다. 전체적으로 한국판 뉴딜은 선택과 집중에 따라 각각 12개, 8개, 5개 중점 프로젝트가 엄선되어 총 25개 프로젝트가 추진된다. 총 투자규모는 2020년부터 2050년까지 총 76조원 규모다.
홍 부총리는 “문재인정부 기간인 2022년까지의 1단계는 31조3,000억원이다”라며 “그 이후 2023년부터 2025년까지의 2단계 규모는 45조원 수준으로 구분되며 국민들께서 뉴딜 성과를 체감하실 수 있도록 정부는 1단계 프로젝트 추진에 모든 정책역량과 재원투입을 집중할 계획이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