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항명’ 명분 실어준 검찰 수뇌부들
검찰 수뇌부들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이른바 ‘문민통제’를 거부할 명분을 실어줬다. 대검찰청은 한동훈 검사장과 채널A 기자의 유착 의혹 수사와 관련한 추 장관의 지휘권 행사가 부당하다는 취지의 검사장 회의 다수 의견을 윤 총장에게 보고했다고 6일 밝혔다.
대검이 이날 윤 총장에게 보고했다는 전국 검사장들의 다수 의견은 ▲검찰총장은 전문수사자문단 절차를 중단함이 상당하고, 공정하고 엄정한 수사를 위해 독립적인 특임검사 도입이 필요하다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 중 검찰총장 지휘감독 배제 부분은 사실상 검찰총장의 직무를 정지하는 것이므로 위법 또는 부당하다 ▲본건은 검찰총장의 거취와 연계될 사안이 아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의견 수렴 절차는 장관 지휘권 행사와 달리 법적 구속력도 없는 데다, 그 출발부터가 윤 총장의 제왕적 태도에서 근거한 비정상적인 과정이었다.
검찰총장의 최측근 검사장이 연루된 사건 수사 지휘를 해선 안 된다는 취지의 법무부 장관의 상식적이고 합법적인 지휘권 행사를 수용하느냐를 놓고 검찰 수뇌부들의 회의를 소집한 건 ‘검찰은 문민통제의 대상이 아니다’는 윤 총장의 제왕적 사고방식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줬다.
윤 총장은 이 사건 수사를 서울중앙지검에서 진행할 때부터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을 분리하고자 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의 수사 흐름이 자신의 의중과 다르게 전개되자 ‘합리적 절차’를 가장해 수사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앞서 <민중의소리> 취재에 따르면 윤 총장이 애초에 사건 수사 지휘·감독권을 일임했던 대검찰청 부장회의에서는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의 ‘채널A 이동재 기자 구속영장 청구’ 방침에 이견이 없었다. 수감 중인 취재원을 상대로 겁박한 정황이 명백하다는 것이었다. 단, 추 장관이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감찰을 언급한 것 등을 두고는, ‘우리한테 좀 너무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일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수뇌부의 전형적인 ‘제식구 감싸기’다.
윤 총장은 이 부분을 착목했다. 애초 대검 부장회의에 안건으로 올라온 이동재 기자의 구속영장 청구 여부뿐 아니라, ‘한 검사장에 대한 수사 여부’까지 전문수사자문단을 소집해 심의하도록 한 것이다. 현직 검사장에 대한 수사 여부까지 직접적인 논의 대상이 된다면 결론이 바뀔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는 지난 2008년 권성동 의원이 연루된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 수사 과정에서 포착된 현직 검사장의 수사개입 의혹을 두고 전문수사자문단이 다수의견으로 ‘불기소’ 권고한 전례를 답습한 것이었다.
수사 흐름대로였다면 수사팀이 이 기자의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이후 한 검사장과의 유착 의혹으로 수사를 확대해나갔을 가능성이 컸겠지만, 현재로선 윤 총장의 전문자문단 카드로 수사가 정지된 상태다. 그러나 추 장관이 전문자문단 소집을 중단하라는 지휘를 하면서 윤 총장의 수사개입에도 제동이 걸렸다.
'검언유착 의혹'과 관련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수용 여부를 두고 윤석열 검찰총장이 전국 검사장들을 소집한 3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검찰기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2020.07.03
'검언유착 의혹'과 관련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수용 여부를 두고 윤석열 검찰총장이 전국 검사장들을 소집한 3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검찰기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2020.07.03ⓒ김철수 기자
검찰 안팎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을 종합하면, 추 장관의 지휘권 행사 이후 윤 총장이 보인 행보는 장관 지휘권 거부에 목적을 두고 있었음이 명백해 보인다.
특히 윤 총장이 장관 지휘 수용 여부를 놓고 의견을 수렴한다는 명목으로 고검장들과 검사장들을 소집한 건 추미애 장관의 지휘를 불복할 명분을 찾기 위한 절차에 가깝다.
지난 2005년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이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국가보안법 사건 불구속 수사 지휘를 한 이래 검찰총장 의중과 대립되는 문민장관의 지휘권 행사는 15년 만의 일이었다. 당시 김종빈 검찰총장은 장관의 지휘를 수용한 후 검찰의 독립성 침해를 이유로 총장직을 사퇴했다.
검사 출신이 아닌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행사는 수사 지휘를 하는 검사장 이상 검찰 수뇌부로선 썩 달가운 일이 아니다. 김종빈 전 총장의 사퇴 이유에서 짐작할 수 있듯 검찰 수뇌부 상당수는 지금도 추 장관의 지휘권 행사를 검찰 조직의 자존심과 직결되는 사안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지난 3일 있었던 고검장 회의와 전국 검사장 회의에서도 이러한 의견이 다수였던 것이다. 그동안 검사 출신 장관의 비공식적인 수사 지휘는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따르다가 문민장관의 공식적인 지휘권 행사는 부당하다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다.
윤 총장이 ‘장관의 지휘권 행사’를 놓고 고검장, 검사장 회의를 소집한 것은 이러한 예상 가능한 분위기에 근거한 계산이었다.
결국 윤 총장의 계산대로 검찰 수뇌부는 ‘장관의 수사 지휘가 부당하며 제3의 특임검사를 선정해야 한다’는 다수의견으로 윤 총장이 추 장관의 지휘권 행사를 거부할 힘을 실어줬다.
이의제기권 행사나 법무부 장관 지휘 적합성에 대한 헌법재판소 권한쟁의심판 청구 등 다양한 가능성이 언론을 통해 언급됐으나, 이는 법적 한계 등으로 인해 대검이 공개한 내용에서는 빠진 것으로 보인다.
윤 총장은 대검을 통해 이날 공개된 검사장들의 의견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해 추 장관의 지휘권 행사에 대한 답변을 조만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