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당한 닭 대신 증언한다” 초복 ‘인간 법정’서 울려 퍼진 동물의 목소리

2억여 마리의 닭들이 도살되는 복날인 지난 16일, 법정에서 “닭에게 살해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상한 피고인들이었다. 자신의 무죄를 호소하기는커녕 공장식 축산에서 고통받는 닭의 현실을 말하는 데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도계장에서 ‘진실을 목격한’ 동물권 활동가들이 닭들을 대신해 증언에 나섰다. ‘인간의 법정’에서 동물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 첫 번째 사례다.

시간은 세계 동물의 날인 지난해 10월 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물권 직접행동 단체 디엑스이(Direct Action Everywhere-Korea) 활동가들은 약 200kg 시멘트로 가득 찬 여행 가방 안으로 서로의 손을 결박한 채 도계장 입구를 가로막았다. “죽기 위해 태어난 생명은 없다”라는 기조 아래 “살고 싶은 동물을 살해하는 건 합법이고, 구조하는 건 불법인 현실”에 비폭력적으로 저항하는 전 세계적 직접행동의 일환이다.

법원은 업무방해 혐의로 이들에게 벌금 1천200만 원의 약식명령을 지난 2월 선고했다. 이에 활동가들은 “인간 중심적인 법은 정의롭지 않다. 법정에서 농장 동물이 처한 끔찍한 현실을 알리겠다”라며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은영 활동가는 “동물을 죽여 이윤을 내는 구조에서 최약자인 동물들은 고통을 말할 기회도 없다. 기득권의 공간에서 최약자의 권리를 변론하는 것으로 균열의 시작이 될 수 있다”라고 재판의 의미를 짚었다.

동물권=동물 보호?
“살고 싶은 모든 이에게 권리가 있다”

이날 수원지법 형사2단독 우인선 판사 심리로 향기·자야·유비 활동가의 결심 공판이 진행됐다. 우 판사는 활동가들이 충분히 최후변론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들은 직접 써온 변론문 10장가량을 읽으며 중간중간 도살장·농장 속 동물들이 담긴 영상을 틀었다. 70여 명의 시민이 법정을 가득 메워 또 다른 목격자가 돼줬다. 한 시간가량 진행된 최후변론 내내 우 판사는 활동가들과 눈을 맞췄고 영상 속 동물들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최후변론에 나선 향기 활동가는 첫 번째 공판기일에서 ‘동물권 활동가’가 무엇인지 묻던 우 판사의 질문에 답했다.

“사람들은 ‘동물권’이란 단어를 접했을 때 ‘권리’란 단어가 감히 동물에 붙는 것에 의아해합니다. 이내 ‘동물 인권’이라고 하거나 ‘동물 보호’로 고쳐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모든 동물에게 권리가 있습니다. 없던 권리를 만들어 주자는 말이 아닙니다. 모든 동물은 이미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죽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살고 싶어 합니다”

“동물은 우리와 같이 기쁨, 슬픔, 분노, 사랑을 느끼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를 부정하고 왜곡합니다. 인간이 아닌 동물들은 열등하고 더럽고 영혼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게 폭력을 정당화합니다. 이는 예전부터 있었던 논리입니다. 백인은 흑인을 노예로 삼고 땅과 자식들을 빼앗았고, 나치는 유대인을 학살했습니다. 남성은 여성을 침묵하게 하고 억압했습니다”

디엑스이는 동물권리장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고통과 착취의 상황에서 구조될 권리 ▲보호받는 집, 서식지, 또는 생태계를 가질 권리 ▲법정에서 그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법에 따라 보호받을 권리 ▲인간들에게 이용·학대·살해당하지 않을 권리 ▲소유되지 않고 자유로워질 권리 또는 그들의 권익을 위해 행동하는 보호자가 있을 권리 등이다. 현행 동물보호법과는 다르다. 동물을 보호 대상이 아닌 권리 주체로 보기 때문이다.

“도살장 앞에서 눈을 마주한다면”

동물들이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활동가들은 농장·도살장 등에서 동물이 경험하는 폭력적 현실을 마주하는 활동 ‘비질’을 촬영한 영상을 재생했다. 동물들이 지르는 고통의 비명이 고스란히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식탁 위 ‘고기’로 오르기 전, 가려졌던 모습이었다. “우리가 너를 가두었다. 너의 자유를 빼앗았다”라는 영상 속 노랫말은 방청객들의 흐느낌 소리에 묻혔다. 우 판사와 검사도 영상을 끝까지 지켜봤다.


향기 활동가는 비질에서 만났던 동물들을 떠올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특히 그는 지난해 여름 만났던 닭 ‘여름이’에 대한 미안함을 드러냈다. 도계장에서 탈출한 여름이는 향기 활동가의 품에 안겼으나 이내 직원의 손에 도계장으로 끌려갔다.

“그동안 만나온 피해자들의 수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말문을 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저는 진실을 목격한 자로서, 지금 이곳에 있어야 할 피해자들을 대신해 그들의 부당한 죽음과 고통에 대해 일부라도 증언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건 모든 이해관계를 떠나 오로지 피해자들의 고통과 잔혹한 현실 자체를 마주해주시길 간곡히 요청합니다”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자야 활동가는 비질에서 동물들과 눈을 마주한 뒤 그 눈동자가 아른거려 잠을 이룰 수 없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입구를 가로막은) 그 도계장은 저희가 죽음을 목격하던 장소 중 하나였습니다. 그곳은 수천 마리의 어린 닭들이 매일 살해당하는 곳이었습니다. 도살 직전의 닭들은 강한 햇볕에 탈수로 이미 죽어있거나, 오물을 뒤집어쓰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한 닭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도살 직전 이들은 삐악삐악 소리를 냅니다. 고작 4주밖에 되지 않은 병아리들이기 때문입니다”

“동물들이 도살되는 영상을 보여주면 사람들은 얼굴을 찡그리며 자리를 피합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며, 잔인한 진실을 숨기고 외면하려 합니다. 동물을 죽이는 게 옳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동물을 사랑해서 동물원에 가던 아이는 이제 동물원에 가지 않습니다. 닭을 좋아해서 삼계탕을 먹던 아이는 이제 닭을 먹지 않습니다. 대신 도살장 문에 몸을 결박했습니다”

당시 이들은 도계장 입구를 가로막아 각각 닭 4천5백여 마리가 실린 트럭 2대를 세웠다. 죽음의 시간을 잠시 멈춘 것이다. 다시 그곳은 일상의 도계장으로 돌아갔지만, 이 때문에 활동가들은 법정에서 잊혀진 동물들의 고통을 증언할 수 있었다.

유비 활동가는 저항운동으로 권리의 범위가 넓어지는 과정에서 동물권도 보장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가 어느 날 일어서지도, 팔을 펼지도 못하는 녹슨 철장에 다른 이들과 와글와글 갇힌다면 어떨까요. 이런 모습을 판사님이 보신다면요. 분명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를 구해주실 거에요. 저에겐 인권이 있어서요. 살아있기에 권리장전으로 인간이 삶의 주권을 확보한 것처럼, 동물에게도 이들의 권리를 확립하는 정의가 필요합니다. 한때 여성과 노예에게 없던 권리가 선대의 긴 투쟁으로 생겨난 것처럼, 그렇게 정의의 손길이 널리 나아갔듯이요”

“표현의 자유…업무방해는 무죄”
“철저한 비폭력, 아무 피해도 없어”

피고인 측은 공판과정에서 무죄를 주장했다.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는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비폭력적 저항운동을 한 것이므로 업무방해 혐의 구성요건에 맞지 않는다는 취지다. 형법 제314조는 위력으로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를 처벌하고 있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업무방해가 일어났다면, 무죄에 해당한다는 판례가 제시됐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사건이다. 제주지법은 2016년 2월 해군기지 건설공사 현장 출입구 앞을 연좌하는 등 방식으로 가로막아 차량의 진·출입을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강정 주민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가 갖는 의미를 강조하며 업무방해 혐의 구성요건을 좁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업무방해 혐의로) 문제가 된 행위가 표현의 자유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경우 (구성요건인) 위력의 의미를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하고, 피고인의 행위로 피해자의 업무에 구체적인 위험 또는 손해가 발생할 것을 필요로 한다고 해석해야 한다”라며 했다.

이어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의 역사가 애당초 프랑스나 일본에서 노동운동을 금압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업무방해죄가 우리 형법에도 규정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라며 “기본권 행사와 관련된 영역에서 업무방해죄의 적용이 통상 해석에 따라 이뤄질 경우 국민의 기본권이 과도하게 제한될 위험이 존재한다”라고 짚었다.

피고인 측은 ‘위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박세훈 변호사(법무법인 이평)는 “당시 몸을 결박한 활동가들은 젊은 여성 4명에 불과했으며, 누워있는 수동적인 행위에 그쳤을 뿐, 어떤 폭력도 행사하지 않았다. 경찰이 결박을 해체하는 과정에서도 전혀 저항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판례에 따라 업무방해죄를 좁게 해석하면, 도계장 사업주에게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위험’이 발생하지 않았다고도 주장했다. 이날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한 사업주는 비공개 신문에서 물적 피해 규모가 3억이라고 했으나, 이를 증명할 객관적인 자료를 제출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업주는 이들의 행위로 다수의 닭이 죽었다고 했다. 하지만 박 변호사는 “당시 평균기온 22℃에서 3~4시간 대기한 것만으로 닭들이 폐사했다면, 이는 공장식 축산에 따른 밀집 사육과 폐사 직전의 건강 상태에서의 장시간 운송, 그 과정에서 장시간 사료 절식 등에서 기인했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부합하다”라고 반박했다.

피고인 측 이찬 변호사(법무법인 명지)는 “피고인들이 집회·시위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표시하는 대상은 정부·국회 등 권력기관이 아니고, 육류를 공급·소비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일반 대한민국 국민”이라며 “피고인들의 행위에 업무방해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다른 방법으로 이 같은 의사를 효과적으로 표시하기 어렵다”라고 강조했다.

활동가들의 행위가 ‘정당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위법성을 조각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형법 제20조(정당행위)는 사회 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동물권을 보호하고 공장식 축산을 반대하는 정당한 동기와 목적에 따라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행사했으며, 그 수단이 폭력적이지 않음으로 정당행위라는 취지다.

“동물들과 함께 했다면…”

피고인들을 비롯해 이날 재판을 방청한 시민들은 재판 직후 벅찬 마음과 함께 아쉬움을 표했다. 특히 이들은 재판에 함께 하지 못 한 동물들을 떠올렸다. 섬나리 활동가는 “이번 재판으로 9개월 전 도계장에서 만났던 닭들을 함께 기억했다. 원래라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을 죽음이었다. 죽음의 시간을 멈춰 그들의 존재를 기억한다는 게 뜻깊다”라고 말했다.

향기 활동가는 “여름이 이야기를 공식적으로 처음 했다. 여름이를 빼앗기고 눈앞에서 또 다른 어린 새의 목이 꺾이는 장면이 잊히지 않아서 힘들었다. 그들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최후변론을 했다”라고 전했다. 랑 그림기록 활동가는 아쉬운 마음을 담아 재판장 옆자리에 ‘여름이’를 그려 넣었다.

은영 활동가는 “동물의 현실이 더는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헌신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변화와 희망을 보여줘 더 많은 이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동물의 존재를 단순한 식이 취향의 선택지 속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 동물의 존재 자체에 집중해 동물권을 인간의 법적 영역인 공론장에 내보이는 것에 재판의 의미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특이한 몇 사람만의 이상한 생각이 아니라 전 세계가 동참하는 떳떳한 정의 운동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문제에 직면했을 때 더는 회피하지 않고 솔직하게 직면해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권리 영역이 역사 속에서 진보해온 것처럼 동물의 존재와 권리가 다뤄질 수 있다”라고 기대했다.

이날 재판에서 울려 퍼진 동물들의 현실이 판결문에 기록될지, 다음 달 20일 선고 공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