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포기하면 3천만원, 싫으면 울산 가”...정규직화 저지하려는 현대위아 회유·압박
금속노조 법률원 관계자 “재판청구권 행사 이유로 근무지 변경은 부당노동행위”

자동차 엔진을 생산하는 평택 현대위아 공장에서 일하는 사내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사로부터 “소송을 철회하면 그 대가로 3000만 원을 주고 계속 평택 공장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울산 공장으로 내려가라”는 회유·압박을 받고 있다.

현대위아주식회사는 현대기아자동차에 자동차 엔진을 납품하는 현대기아자동차 부품생산 계열사다.

지난 20일 민중의소리가 입수한 현대위아 사측과 일부 사내하청비정규직 간 합의서 및 별도합의서를 보면, 회사는 노동자들이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취하하면 소송비용 보전금과 격려금 등으로 약 3000만 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또 이를 거부한 사내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선 울산공장으로 내려가라고 했다.

이에, ‘회사가 노동자들이 기본 권리인 재판청구권을 행사한다는 이유로 일하는 곳을 멀리 옮기는 등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부당노동행위를 행사한 것 아니냐’는 지적과 ‘그동안 사내하청비정규직들은 현대위아 직원이 아니라며 직고용 의무를 회피해 왔던 현대위아가 사내하청비정규직의 고용 문제를 두고 직접 주체로 나서면서, 진짜 사용자임을 인정한 것 아니냐’는 분석 등이 나온다.

“3천만 원 줄게, 소송 취하해”


금속노조 경기지부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에 따르면, 금속노조 조합원이면서 소송을 전개하고 있는 경우 소송을 취하하면 총 2950만 원에서 3000만 원 상당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또 금속노조 조합원이 아니고 아직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경우엔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약속 등을 받아내면서 2300만 원을 약속했다.

합의서엔 주로 ▲ 계류 중인 소송 취하 ▲ 해당 사건과 동일한 소송 제기하지 않기 ▲ 합의 내용에 반하는 소송 및 이의제기하지 않기 ▲ 소송 진행 과정 및 본 합의 체결과정, 이행과정, 체결됐다는 사실 등을 제3자에게 누설하지 않기 등의 내용이 담겼다.

그동안 현대위아 평택공장에서 일해 온 사내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러 차례의 업체 폐업 및 계약해지 등으로 고용불안에 시달려 왔다. 참다못한 노동자들은 지난 2013년 5월 현대위아평택비정규직지회를 결성하고 노조 활동을 시작했다. 이어 이들은 고용불안과 차별을 끊어내겠다는 취지에서 2014년 집단적으로 불법파견소송(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하여 1심과 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법원은 회사가 이들을 ‘직접 고용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해당 사건은 사측의 상고(上告)로 현재 대법원에서 계류 중이지만, 올해 4월경 쟁점 집중심리를 진행한 점 등을 고려하면 이르면 8월 또는 늦어도 올해 안으로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회사는 1·2심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고,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자회사를 설립해 사내하청비정규직들을 회유하고 있다. 자회사로 보내는 방식으로 ‘1·2심으로 판결로 발생한 직고용 의무’를 회피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같은 회사의 회유·압박은 지난달 24일부터 시작됐다는 게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관계자의 말이다. 하지만 21일 기준 160명가량 되는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조합원 중 120명가량의 조합원은 여전히 이 합의서에 서명하지 않고 “법원 판결대로 정규직 전환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자, 회사는 120명가량 되는 금속노조 조합원들에게 울산에 있는 공장으로 내려가라고 하고 있다. 회사는 최근 현대위아 평택 1공장이었던 곳을 자회사인 WHI로 변경하고, 자회사에 동의한 사내하청노동자들을 배치하고 있다. 회사는 압박이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노동자들 입장에선 ‘소송을 취하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압박으로 느껴지는 상황이다.

금속노조 법률원 이상권 노무사는 “노조 조합원들이 재판청구권을 행사한다는 이유로, 근무지를 먼 곳으로 보내는 방식 등으로 불이익을 주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번 일은 사용자의 지위에서 근로계약상 사용자의 지위가 인정되는 문제로도 보인다”라며, 직접 합의의 주체로 나서서 논란을 수습하려는 현대위아 측 움직임이 사실상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했다고 볼 수 있는 지점이라는 것을 짚었다.

현대위아 사측 관계자는 “회사가 책임을 회피하고 노동자들을 기만하려는 게 아니라,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며 “원론적 얘기지만, 새로운 자동차 엔진 생산을 수주받아 3~4년 생산하다가 추가 생산이 안 되고 끊기면 수천 명이 할 일이 없어진다. 항상 이런 문제 때문에 직접고용에 대한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나온 대안이 자회사”라고 설명했다.

격려금과 관련해선 “어차피 이분들(사내하청비정규직)이 끝까지 가서 만약 승소하게 되면 임금 차액분을 받게 돼 있는 것이라, 소송 취하 대가로 격려금을 주는 건 문제 될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또 울산 발령에 대해선 “평택에 2개 공장 중 1개 공장은 자회사로 바꾸었고, 다른 1개 공장은 봉고 구형 엔진을 생산하던 곳으로 임대기간이 끝났다. 다시 임대기간을 연장하기 보단 최소한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 회사 소유의 공장인 울산으로 내려가 달라고 제안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지난 21일 오후 현대위아 평택 1공장(현재, 현대위아 자회사 WHI) 앞에서 열린 금속노조 결의대회가 끝난 뒤, 대회에 참여했던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조합원 40여 명은 공장 안으로 진입해 로비에서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결의대회에서 김영일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지회장은 “일할 때는 최저임금 주면서 부려 먹더니, 불법파견 소송을 취하하지 않는다고 설비도 식당도 없는 텅텅 빈 울산공장으로 부당전보발령 내면서, 월급도 실업급여도 받지 못하게 하는 신종 탄압을 (현대위아) 자행하고 있다”라며 “현대위아가 이처럼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이유는 그동안 저질러온 불법파견 범죄를 회피하고, 사내하청비정규직들의 피와 땀을 착취할 수 있는 노동구조를 바꾸고 싶지 않아서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김 지회장은 “이런 (부당한) 노동구조를 법으로도 바꿀 수 없다면, 노동자들이 단결된 힘밖에 없다”라며 “단결된 힘으로 꼼수 막아내고,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끝까지 투쟁해서 승리하자, 비정규직 철폐하고 정규직화 쟁취하자”고 외쳤다.

현대위아비정규직평택지회 조합원들이 농성을 시작한 현대위아 평택 1공장은 현재 신규투자를 받고 설비를 개선하는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공장 재개는 올해 9월쯤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