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본 수출 규제는 WTO 심리 대상 아냐”…산업부 “판례 판단은 달라”
미국, ‘국가안보’ 명목 무역 조치 정당화 주장…산업부 “특별히 일본 입장 지지한 건 아냐”

미국이 한국에 대한 일본 수출 규제를 둘러싼 분쟁을 두고, 국가안보 조치는 세계무역기구(WTO) 심리 대상이 아니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4일 WTO 회의록 요약본을 보면, 미국 측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 WTO 본부에서 열린 WTO 분쟁해결기구(DSB) 정례 회의에서 “오직 일본만이 자국의 본질적 안보에 필요한 조치를 판단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을 규제한 건 국가안보 조치로, WTO가 정당성을 판단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주장이다.

미국은 “최근 들어 국가안보 조치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송이 급증하고 있다”며 “이는 70년 넘게 국가안보 관련 사안에 개입하지 않았던 WTO에 심각한 위험을 안겨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일본은 지난해 7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주요 소재·부품인 불화수소·포토레지스트·플루오린 폴리이미드 3개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을 규제하면서, 국가안보를 명목으로 내세웠다. 불화수소 등 전략물자가 한국에서 북한으로 반출돼 독가스인 사린가스와 우라늄 농축에 사용된다는 주장이다.


한국 정부는 해당 품목이 북한을 포함한 유엔 결의 제재 대상국으로 유출됐다는 증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한, 일본 수출 규제는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 기업에 대해 배상 판결을 내린 데 대한 보복 조치로 보고 WTO에 제소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 측 발언에 대해 “일본 입장을 지지한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간 미국은 한일 수출규제 분쟁과 관계없이, 국가안보를 위한 조치는 WTO 심리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해왔다는 게 근거다.

미국 발언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가트) 제21조가 ‘필수적 국가안보 보호 예외 조치’를 규정한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국가안보를 위한 조치는 정당화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GATT 제21조는 피소국 조치와 국가안보 간 인과관계 여부가 쟁점이 된다. 가령 일본 수출 규제 목적이 국가안보보다 강제징용 기업 판결에 대한 보복 성격이 강하다고 판단하면 해당 조항은 적용되지 않는다.

산업부에 따르면, 미국은 타국 사건에 대해서도 일관적으로 ‘안보 예외’를 강조해왔다. 미국도 안보를 이유로 수입산 철강 제품에 관세를 매겨 WTO에 피소됐으며, 이후 줄곧 안보 예외를 주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 사우디-카타르 분쟁에서도 같은 주장을 했다.

산업부는 “기존 분쟁에서도 WTO 패널은 미국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WTO 판례는 미국 측 입장과 달리 패널이 GATT 제21조 안보 예외를 심리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